바이크/모토캠핑

비 맞고 들어간 운문댐하류보 모토캠핑

레스트드롭 2022. 5. 2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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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쯤 대구 사는 지인에게 운문댐하류보가 개방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는 바로 다음 주말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런 건 미루면 또 한참 못 가게 되니까, 생각났을 때 바로 가는 게 맞다 싶었다.


내가 앉을자리는...

이번엔 짐도 좀 넉넉하게 싣고 가보려고 로부백 90L로 사이즈를 올렸는데,
막상 실어보니 생각만큼 여유롭진 않았다.
큰 짐들은 가방 안으로 다 들어가긴 했지만, 애매한 것들은 결국 양옆이랑 뒤쪽 박스에 다 밀어 넣어야 했다.
그 상태로 출발하려고 앉아보니, “아 이건 좀…” 싶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이미 나설 생각으로 짐을 다 챙긴 상태였고, 필요 없는 것만 최대한 빼고 그냥 출발했다.
부산을 벗어나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하필 출발 시간도 오전 11시쯤이라 그날 더위가 한창 올라올 타이밍이었다.
가다가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웠다.

운문 쪽 가까이 도착했을 때는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도로가 젖어 있었고, 공기에서도 비 냄새가 올라왔다.
설마 아니겠지, 제발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공기가 시원해져서 조금은 살 것 같았다.
근데 그런 생각을 하며 진입하는 순간 바로 비가 쏟아졌다.
정말 그대로 쏴아아아아 하는 느낌이었다.

앞에 가던 할리 라이더는 바로 피신해 버렸고,
나는 그냥 소나기겠거니 하고 무시하고 계속 달렸다.
근데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분이 맞았다.
홀딱 젖고 나서야 그 판단이 훨씬 현명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비를 다 맞고 도착한 곳이 운문댐하류보였다.
처음엔 “바이크 들어가도 되나?” 싶어서 주변부터 한 바퀴 돌아봤는데, 이미 같이 가기로 한 일행들 외에도 바이크가 두세 대 정도 더 들어와 있는 게 보여서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먼저와있던 일행들

막상 가보니 자고 가기로 한 사람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늦었다.
다들 이미 자리를 잡아놓고 있었고, 나는 비까지 맞고 도착해서 더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이런 분위기에서는 늦게 도착해도 일단 사람들 보이면 안심이 된다.

짐을 대충 꺼내놓고 커피 한잔 마시려는 순간,
또 비가 쏟아졌다.
이날은 진짜 비가 사람을 따라다니는 날 같았다.

한 명은 뭐 좀 사러 잠깐 나갔다가 아예 고립됐다는 카톡을 보내왔고,
그냥 무시하고 가려고 했더니 배달 라이더가 지금은 못 탄다고 안에 들어가 있다가 가라고 했다더라.
결국 비가 좀 그치고 나서야 겨우 복귀했다.
이쯤 되면 진짜 비를 몰고 다니는 바이크 같았다.

그치자마자 복귀했지만..

현장에는 사이트가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는데,
나무가 일정 간격으로 심어져 있어서 다들 대충 그걸 기준으로 자리를 잡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최대한 안쪽 구석으로 자리부터 잡았다.
노지 분위기라 자유롭긴 했지만, 대신 어디까지가 괜찮은 자리인지 눈치가 조금 필요한 곳이기도 했다.


방염포,소화기는 필수

불 피울 준비를 하면서는 방염포를 깔고 옆에 소화기도 바로 가져다 놨다.
노지에서 화로 쓸 때는 이런 건 그냥 필수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괜히 한 번이라도 문제 생기면 수습이 훨씬 더 커지니까, 이런 건 오히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챙기는 게 낫다.

 


문어소세지, 흑돼지목살
문어소세지는 누가 먹었는지 모르겟지만 다굽자마자 사라졌다
놀땐 좋았지만 다음날 처치곤란이었던 맥주
산토리위스키 OLD / 이번에 완전 다 비워버렸다
유류캠(?) OST 깔아놓고 식사중
그냥 찍어본 조명들
불멍!

그 뒤로는 저녁 준비.
문어소시지, 흑돼지 목살, 라면, 맥주, 위스키까지 먹을 건 거의 다 나왔다.
문어소시지는 누가 먹었는지 굽자마자 바로 사라졌고, 라면은 진짜 계속 끓였다.
놀 땐 몰랐는데 다음 날 남은 맥주 처리할 때는 조금 곤란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게 또 모토캠핑 맛이다.
 
먹을 것들 다 먹고 마실 것도 다 마시고 잠시 쉬고 있는데
바이크 들어와 있는 거 보고 누가 관리인한테 민원 넣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원래는 하류보 내로 들어오면 안 된다고 함
 
저녁쯤 되니 다섯 명 정도가 추가로 더 들어왔다.
우리는 먹을 걸 다 같이 사 오기로 했던 상태라, 안 그래도 언제 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 같이 모이니 그제야 본격적으로 저녁 분위기가 완성되는 느낌이 났다.

근데 또 중간에 일이 하나 생겼다.
안쪽에 바이크가 들어와 있는 걸 보고 누가 관리인한테 민원을 넣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원래는 하류보 안으로 바이크가 들어오면 안 되고, 주차장 쪽에 세워야 한다고 하더라.
결국 관리인과 얘기하면서 좋게 풀었고, 우리는 술도 한잔씩 한 상태라 당장 나갈 것도 아니라 조용히 정리했다.
들어와 있던 바이크는 더 있었지만 우리 쪽이 제일 많이 세워져 있어서, 대표로 한소리 들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이쪽 가는 사람은 바이크는 주차장에 두는 쪽으로 생각하고 가는 게 맞다.

11시에서 12시쯤 되니 갈 사람은 가고, 잘 사람은 잘 준비를 했다.
그때 바이크 한 대가 먼저 나가야 했는데, 또 민원 들어올까 봐 결국 시동도 안 켜고 끌바로 밖으로 뺐다.
그렇게까지 하고 나니 그제야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이후에는 불 앞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하나둘씩 들어가 잠들었다.
노지 캠핑은 결국 저 시간이 제일 좋다.
아무 일정도 없고, 할 일도 없고, 그냥 불 보고 앉아 있는 시간.


다음 날 아침에는 더워서 깼다.
나와보니 내 텐트가 그늘을 하나도 못 받고 완전히 땡볕에 놓여 있었다.
전날 그렇게 추웠는데, 다음 날은 또 더워서 깨는 걸 보니 날씨가 참 정신없었다.

옮기기도 애매해서 그냥 일찍 일어난 김에 한 바퀴 둘러보고 정리를 시작했다.
남아 있던 네 명도 다 일어나서 커피 한잔씩 마시고, 점심은 먹고 정리하자고 했는데
하필 제일 더운 시간대인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온도계가 33도를 찍고 있었다.
5월 날씨라고 보기엔 좀 과한 수준이었다.

대충 정리된 짐들
쓰레기 분리수거가 끝나고 짐 적재된 후

짐은 대충 정리됐고, 쓰레기는 진짜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을 정도였다ㅋㅋ
바이크 세 대에 쓰레기까지 다 묶어서 분리수거장에 가서 정리하고 나니 그제야 복귀 준비가 끝났다.
근데 그때부터는 너무 더워서 진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결국 청도 나가기 직전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빙수랑 스무디 하나씩 먹고 나서야 좀 살 것 같았다.
그렇게 겨우 복귀했다.

주유할 때도 한 번 더 고생했다.
F800GS는 연료통이 뒤쪽에 있어서, 뒤에 적재해 둔 짐을 조금 풀어야 주유건이 들어간다.
그걸 모르고 그냥 넣으려다가 짐을 다 쏟을 뻔했다.
장거리 다니기엔 좋은데, 이런 구조는 확실히 짐 많이 싣고 다닐 때 귀찮다.


지옥이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번 운문댐하류보 모토캠핑은 꽤 재밌었다.
비만 안 맞았어도, 지인들 때문에 민망한 상황만 없었어도 훨씬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먹고 마시고 떠들고 하룻밤 보내기엔 충분히 괜찮았다.
다만 다음에 다시 간다면, 바이크는 안쪽에 넣지 말고 주차장에 세우는 것부터 확실히 기억하고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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