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바이크로 일본여행 3일차, 시코쿠 카르스트와 오보케 라이딩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도고온천 근처


나는 원래 아침밥을 잘 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행만 오면 눈뜨자마자 먹게 된다.
막상 먹으면 또 잘 들어가긴 한다.
여행 중에는 몸이 더 빨리 에너지를 찾는 건지, 아니면 오늘 또 얼마나 걸을지 달릴지 아니까 일단 넣고 보는 건지 잘 모르겠다.
조식을 빠르게 먹고 나니 출발 전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이 시간을 그냥 보내기엔 아까워서, 최대한 써먹기로 했다.
그래서 길거리를 조금 방황하듯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도고온천 근처는 아침 시간대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더 한적하고, 밤에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천천히 걸어보니 “아, 이래서 이 동네가 유명하구나” 싶은 느낌이 조금 더 잘 들어왔다. 도고온천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가운데 하나로 자주 소개되고, 본관 건물 자체도 1894년에 지어진 역사적인 건물이라 그런지 거리 분위기에도 묘하게 시간이 켜켜이 쌓인 느낌이 있다.
오전 중으로 근처를 대충 다 둘러보고, 다음 일정으로 출발했다.
신기한 담배 하나, 그리고 시코쿠 카르스트로


시코쿠 카르스트로 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꽤 신기한 담배를 발견했다.
고민도 없이 바로 샀는데, 알고 보니 타르 28mg에 니코틴 2.8mg, 심지어 필터도 없는 타입이었다. 이건 그냥 피우는 용도라기보다는 전시용에 가까운 물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결국 “이건 기념품이다” 하고 마음속으로 정리했다.
그렇게 다시 출발해서 시코쿠 카르스트로 향했다.
시코쿠 카르스트는 에히메현과 고치현 경계 부근 해발 약 1,400m 선에 펼쳐진 고원 지대로, 일본 3대 카르스트 중 하나로 꼽힌다.
초원과 석회암 지형이 어우러진 풍경 때문에 드라이브나 라이딩 코스로도 유명하다.
기대했던 시코쿠 카르스트, 현실은 안갯속


그런데 막상 올라가 보니 완전히 구름 속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안 보였다.
기대를 많이 했던 곳이라 더 허무했다.
날씨 좋은 날 사진으로만 보던 그 시원한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그냥 안갯속을 달리고 있는 느낌뿐이었다.
이쯤 되니 UFO 라인을 가도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UFO 라인은 이시즈치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약 27km 정도의 산악 드라이브 코스로, “하늘길”이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조망이 좋기로 유명한 길이다.
해발 1,300~1,700m 구간을 지나며 시코쿠 전역이 내려다보이는 파노라마가 장점인데, 이런 날씨라면 가봤자 똑같이 아무것도 못 볼 게 뻔했다.
그래서 UFO 라인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아쉽긴 했지만, 이런 판단은 빨리 하는 게 낫다.
괜히 미련 갖고 올라갔다가 시간만 더 쓰고 내려오는 것보다는, 다른 루트를 생각하는 편이 훨씬 낫다.
계곡 쪽으로 내려오니 또 다른 분위기






시코쿠 카르스트를 포기하고 내려오면서 근처 계곡 쪽에서 사진을 찍으며 잠깐 놀았다.
높은 쪽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아래로 내려오니 또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물론 날씨가 완전히 좋다고 하긴 어려웠지만, 적어도 구름 속을 달리는 느낌은 벗어났다.
그런데 사진을 찍고 놀다 보니 하늘이 점점 더 흐려지기 시작했다.
슬슬 느낌이 왔다.
“아, 이건 진짜 비 오겠구나.”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결국 오보케 까지는 계속 달리기만
이때부터는 쉴 틈 없이 오보케 까지 계속 달렸다.
날씨가 점점 더 나빠지면서 중간에 멈춰서 뭘 하기가 애매해졌고, 그냥 최대한 목적지까지 가는 데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보케는 도쿠시마 쪽 산악 지대에 있는 협곡 지역으로, 요시노강이 오랜 세월 깎아낸 절벽과 협곡 풍경으로 유명하다.
오보케·고보케는 시코쿠에서도 자연경관이 강하게 기억되는 지역 중 하나고, 래프팅이나 유람선으로도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날의 나는 그런 걸 즐길 상태가 아니었다.
그냥 비 맞지 않고 숙소에 도착하는 게 더 중요했다.
흠뻑 젖은 채 체크인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완전히 쫄딱 젖은 상태였다.
호텔 안으로 들어가니 직원분이 수건부터 꺼내주시면서 몸 닦으라고 챙겨주셨다.
이런 순간엔 그런 작은 배려가 진짜 크게 느껴진다.
체크인을 마치고 나니 밥시간이 애매했다.
그래서 일단 방에 올라가 옷만 갈아입고, 바로 다시 내려와 저녁부터 먹기로 했다.
한 번쯤은 먹어볼 만한 가이세키

저녁은 가이세키 스타일의 일본식 코스 요리였다.
일본식으로는 꽤 정갈하고, 보기에도 예쁘고, 하나하나 손이 들어간 느낌이 확실히 나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한국 사람 기준으로는
“이 돈이면…”
이 생각이 안 들 수는 없다.
특히 육류 비중이 생각보다 적어서, 배를 든든하게 채운다는 느낌보다는 “경험한다”는 쪽에 가까웠다.
그래도 또 이런 건 여행 중이 아니면 일부러 챙겨 먹을 일도 드물다.
그래서 결국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냐” 하면서 잘 먹었다.
세탁기, 건조기, 온천… 전부 시간과의 싸움
문제는 젖은 옷이었다.
비를 맞고 달린 탓에 거의 전부 축축해져 있어서, 어떻게든 말려야 했다.
다행히 숙소에 코인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었다.
그런데 돌리려고 보니 밤 10시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때 시간이 8시 50분쯤이었다.
보자마자 그냥 “일단 해보자” 싶었다.
후다닥 빨래를 돌려놓고 있는데, 이번에는 온천 마감 시간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또 후다닥 온천으로 달려갔다.
이날 하루는 진짜 계속 뭐에 쫓기듯 움직였던 것 같다.
온천에 들어가 몸 좀 녹이고 나오니, 젖은 채 달리며 쌓였던 피로가 그제야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여행 와서 온천이 좋은 이유가 딱 이거다.
아무리 피곤해도 한 번 들어가고 나오면 그래도 다시 사람 같아진다.
나오면서 세탁이 끝난 빨래는 다시 건조기로 전부 옮겨 넣고, 30분 정도 더 돌렸다.
그래도 완전히 다 마르진 않아서, 아침에 한 번 더 돌리면 되겠지 싶었다.
맑게 시작했지만 결국 비로 끝난 하루
그렇게 정리할 거 대충 다 정리하고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이날은 아침에 도고온천 근처를 산책할 때만 해도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시코쿠 카르스트도 기대했고, UFO 라인도 후보에 있었고, 전체적으로는 풍경 보는 날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안개 때문에 카르스트도 제대로 못 봤고, UFO 라인도 포기했고, 결국 비까지 맞으면서 오보케 까지 달려야 했다.
그래도 또 이상하게, 이런 날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완벽하게 계획대로 흘러간 하루보다, 망한 풍경 하나와 젖은 옷, 급하게 뛰어다닌 저녁, 그리고 마지막 온천까지 한꺼번에 섞인 하루가 더 진하게 남는다.
시코쿠 3일 차는 딱 그런 날이었다.
https://youtu.be/vZF3zwu9ODQ?si=J5mSTSeCiX3gEHlo